아득히 먼 날이지만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날이 있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난 낯선 외국 땅에서 하루빨리 교환학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결혼 날짜를 잡고 준비할 것도 끝내야 할 것도 많아진 바쁜 시간 속에서 신혼여행지로 떠나는 날만을 고대했다.
뱃속에 젤리곰같이 둥지를 튼 척척이를 처음 만난 날, 하루 빨리 세상에 나와주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3년 전 가을, 직장인에서 대학원생이 된 나는 이제 졸업식의 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십여 년간 든든한 바람막이와도 같았던 직장인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진 대신 시작한 공부였기에 계획없이 시작한 이 길의 끝에 서 있을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연 졸업을 하면 재취업은 할 수 했을까? 경단녀에게도 또 다시 기회가 올까?
.....아니,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예상대로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면서 따라간 대학원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 늙어(?) 공부한다는 핑계로 학교가는 날은 가족에게 고스란히 육아의 짐을 넘겼다. 거기에, 대학원의 꽃은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데,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한 육아맘에게 크고작은 사적모임은 사치였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저물면 해가 떠오르듯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맡기다보니 믿기지 않게(?) 졸업의 그날이 찾아와버렸다. 놀랍게도 대학원 재학 중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왔다. 물론 그 핑계로 휴학의 유혹(?)에 넘어갈 뻔 했지만.
대학원 생활 내내 마음의 짐이었던 논문도 무사히 끝냈다. 논문 준비부터 예심, 본심까지 이어지는 넋두리를 늘어놓자면 이박삼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척척이가 자고 나면 무거운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며 자리를 잡은 숱한 밤들이 스쳐지나갈 뿐...
덕분에 고대하던 졸업의 그 날, 나는 웃으며 하늘 높이 석사모를 날렸다. 그저 무탈하게 이 과정을 끝냈음을 그리고 후회가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아직도 졸업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왠지 3월과 함께 또 다시 수업을 들어야할 것 같은 느낌...
가장 큰 수확은, 멈추지 않고 그저 느린 보폭으로도 걸어나간다면 어쨌든 끝에 도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만으로 꽤 뿌듯하다는 것. 그러한 경험을 또 한번 내 삶 속에서 체득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그래서 나는 또다시 오늘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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