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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은 둘리 인형이다. 둘리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요즘 아이들 팔할은 그게 뭔지 되물을 것이다. 비행사란 어엿한 직업을 갖고 있는 뽀로로나 크리에이터인지 뭐시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읊조리는 비대한 몸집 소유자 펭수에 빠진 아이들이 나를 알턱이 없다. 머나먼 남극으로부터 한반도로 이어지는 이른바 '빙하로드'를 닦으며 진출의 물꼬를 튼 자가 바로 이 몸인데도 말이다. 각설하고 나는 한국에 둥지를 튼 후 서울의 한 작은 문방구를 거쳐 한 소녀의 집에 오게 되었다. 편의상 나는 그를 '둘리 어멈'으로 부르기로 한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멈은 여덟살인지 아홉살인지 한창 팔팔한 어린 소녀였다. 까르르까르르 웃어대며 유독 장난기가 많았다. 옆 짝꿍에게 소근대는 소리가 답답하다며 쩌렁쩌렁 소리지르다가 벌을 받기도 하고, 최다 틀.. 2021. 5. 17.
나의 계절, 우리의 계절 “엄마! 나 여덟 살 되려면 몇 밤 자야해?”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한 아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묻습니다. 새로 다닌 태권도장에서 만난 초등학교 형아들이 그렇게 멋있다며, 자기도 빨리 그 형아들처럼 초등학생이 되어 검은띠도 따고 우렁차게 구호도 외치고 싶답니다. “준아, 그렇게 빨리 크고 싶어?” “응! 빨리 시간이 지나서 형아가 됐으면 좋겠어!” 아이가 환하게 웃자 세상도 덩달아 밝아집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도 좋겠다, 맞장구를 쳐 줍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은 조금 쓸쓸합니다. 일생에서 부모님께 하는 효도는 일곱 살까지라고 하던가요. 어느 현자가 그런 말을 남겼는지, 사실 하루 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아까운 요즘입니다. 엄마 아빠 사랑한다며 날려주는 하트, 잘 때 옆에 있어달라고.. 2021. 5. 17.
하이힐과 슬립온, 그 어디쯤 2018년, 퇴사자의 어느 일상 따박따박 출근해야 할 곳이 사라진 일상에서 유일하게 시간을 맞춰야 하는 일과, 바로 아이의 등/하원이다. 하루 시간 '공식적인' 외 준비를 하기 위해 머리를 감고 단장한다. 오늘의 코디는 보이프렌드핏의 청바지, 멋스러운 프릴이 달려있는 블라우스에 걸친 핑크 무스탕 자킷 그리고 비비크림을 살짝 덧바른 뽀얀 피부 연출과 진주 귀걸이, 거기에 에코룩스러운 슬립온이다. 한껏(?) 차려입고 아이와 함께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 그대로 '파자마' 차림의 엄마가 노란 버스에 딸을 태우며 손 흔드는 모습을 보인다. 품 안에 또 다른 아기를 안고서. 꽤 쌀쌀한 아침이었는데 얇디 얇은 7부 파자마 바지와 슬리퍼 차림이 애처로웠다. 아이 둘의 육아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 2021. 5. 11.
나에게 띄우는 졸업축사 아득히 먼 날이지만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날이 있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난 낯선 외국 땅에서 하루빨리 교환학기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결혼 날짜를 잡고 준비할 것도 끝내야 할 것도 많아진 바쁜 시간 속에서 신혼여행지로 떠나는 날만을 고대했다. 뱃속에 젤리곰같이 둥지를 튼 척척이를 처음 만난 날, 하루 빨리 세상에 나와주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3년 전 가을, 직장인에서 대학원생이 된 나는 이제 졸업식의 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십여 년간 든든한 바람막이와도 같았던 직장인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진 대신 시작한 공부였기에 계획없이 시작한 이 길의 끝에 서 있을 내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과연 졸업을 하면 재취업은 할 수 했을까? 경단녀에게도 또 다시 기회가 올까? .....아니, 졸업이나 할 수 .. 2021. 3. 5.